천추태후(千秋太后) = 헌애왕후(獻哀王后, 964년~1029년)
어찌해서 KBS에서 그를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세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천추태후는 이순신, 연개소문, 주몽, 대왕세종과 같은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은 절대적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사견입니다.
오히려 장희빈처럼 궁중 암투를 그린 드라마의 주인공 이어야 제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KBS에서는 극중에서 마치 천추태후가 大고려를 세우려고 거란군과 맞서 싸우는
선봉장을 했으며 이후 3차례의 거란 칩입에 맞서서 싸우는 듯한 고려의 국민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듯한 국민적인 여걸로 묘사를 하려고 하는듯 하다
목적이 그렇다면 역사 왜곡은 이전의 역사 대하드라마 와는 차원이 다른
허구로 가득찰 것이 뻔한 이치이다.
이제라도 역사에 근접하는 시나리오를 쓰고
여기에 재미를 더하는 드라마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추태후는 현재까지의 대부분 역사서에 좋게 기록된 면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거란족을 물리친 민족의 영웅 강감찬 장군을 천추태후의 수하에 두고 부려먹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뿐 입니다.
( 그런데 귀주대첩의 야전사령관 이었던 강민첨 장군에 대한 공적이 현재의 역사서에는
서술이 너무 적다는것도 불만이지만 이점은 강감찬이 문신이어서 총사령관 이었기에
대부분의 공적을 차지하는것 같은 왜곡이 되었다고 생각됨 : 조선조에는 강민첨을
더욱 우대하여 그 후손들에게 많은 땅을 하사해서 오늘날까지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음 )
아뭏튼 천추태후가 여자로서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고 천하를 호령한 면이 있기는하나
이는 신라조에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진성/선덕 여왕에 못 미치고,
오히려 조선조의 정순왕후나 문정왕후와 비슷한 면이 있다 하겠습니다
천추태후는 고려 태조 왕건의 29명의 왕비/후궁에서 25명의 왕자와 9명의 옹주가 족내혼으로
얽혀있는 왕건의 손녀딸(아버니와 어머니가 모두 왕건의 아들딸임)로 태어나
고려 왕실의 족벌간 권력 암투속에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고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된 이후에 수렴청정하면서 잠시나마 고려 천하를 호령한
여걸로 (이 경우 김치양의 이야기는 줄여야 될듯)묘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것이 나의 바램이자 걱정스러운 생각입니다
천추태후 그는 누구인가? ----------------------
천추태후는 고려 태조 왕건의 아들인 추존왕 대종(戴宗)과
태조 왕건의 딸인 선의태후 황보씨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고려 5대 경종(景宗)의 세번째 왕비(王妃)로 부왕(夫王)인 경종과는 사촌지간이며,
고려 6대 성종(成宗) 즉 황주원군의 누이동생이고,
고려 7대 목종(穆宗)의 어머니이며,
고려 8대 현종의 모후 헌정왕후(獻貞王后: 황보설)의 언니이다.
시호로는 응천계성정덕왕태후(應天啓聖靜德王太后)라 하며
흔히 천추태후(千秋太后)라고도 한다
자매지간인 헌애·헌정왕후는 부모의 성인 왕씨(王氏)나 유씨(柳氏)가 아니라,
할머니인 태조비 신정왕태후 황보씨(神靜王后 皇甫氏)의 성을 따른다.
즉 고려조 왕실에서는 아들은 남자의 성을, 여자는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
자매(황보수, 황보설)가 함께 고려 5대 경종(자신들의 사촌이자 외사촌 사이)과 결혼해서
제3왕후, 제4왕후로 지냈으며 헌애왕후는 980년 경종의 아들(후에 7대 목종)을 낳았고
서기 981년에 5대 경종이 죽자 아직 2살이던 헌애왕후의 아들(7대 목종)이 너무어려서
대신에 헌애왕후의 오빠인 황주원군(왕건의 손자)이 6대 성종으로 즉위하게 되자
헌애왕후는 태후가 되어 천추궁(千秋宮)에 머물렀다.
이때에 그녀는 외가의 친척인 김치양(金致陽)을 만나 통정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공공연히 알려져 궁궐에 분란을 일으키자 왕후의 오빠 성종(6대)은
김치양을 귀양보내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김치양을 귀양보내고 천추궁에서 혼자 지내던 천추태후는 여러해가 지나고나서
오빠 성종(6대)가 죽고나서 경종(5대)과 자신의 아들 목종(7대)이 17세의 어린나이로 즉위하자
섭정을 하여 스스로 천추궁에서 사는 자신을 가리켜 천추태후(千秋太后)로 부르게 하였다.
천추태후는 섭정을 시작하면서 귀양간 자신의 정부 김치양을 다시 불러들여서
우복야 겸 삼사사에 임명시키고 막대한 권력을 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태후와 김치양은 둘 사이에서 아이가 출생하게 되었고,
이 아들로 하여금 병이 든 목종(7대)의 후사를 잇고자 했다.
이를 위해 즉위에 걸림돌이 되던 대량원군 왕순(후일의 8대 현종)을
김치양과 짜고 승려로 만들어 절에서 살게 하였으며,
그래도 시중의 여론이 좋지 않고 불안하자 대량원군을 죽이고자
여러번 자객을 보내고 독약을 사용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결국, 자신의 아들 목종(7대)이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이러한 낌새를 알아채고
국경에 나가있던 강조를 불러들여 김치양 일파를 제거하려 했는데....
오히려 이를 알아챈 김치양 일파가 궁으로 오는 강조를 제거하려고 군사를 길목에 매복했으나,
이사실이 군사를 이끌고 궁으로 돌아오던 강조에게 또다시 알려지게되어
5,000 군사를 이끌고 궁으로 쳐들어온 사건(강조의 변)이 일어나서 김치양은 목숨을 잃었고,
강조에 의하여 그 일파는 모두 귀양보내고 천추태후도 유배를 갔으며,
천추태후의 아들인 목종(7대) 마저 폐위되어 유폐지로 향하는 도중에 사약을 내렸으나
이를 거부한 목종은 강조의 부하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강조의 부하들은 목종이 자살 했다고 보고했으며 강조가 직접 살해 지시를 했는지는 확인이 되지않음)
강조는 추종자들이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황족중에서 적통자를 찾으려 했으나
왕건의 피를 이어온 혈족은 4대 광종때에 역모등으로 대부분 살해되었기에(이때에 경종의 어머니도 살해됨)
그이후에 태어난 왕족으로서는 대량원군이 유일했으나 대량원군은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모략으로 강제로 승려가 되어
절에서 지내고 있어 강조는 대량군을 모셔와 왕위에 추대하였는데 이 사람이 바로 현종이다.
[그러나 현종도 불륜의 씨앗임]
유배되었던 천추태후는 조카(헌정왕후 : 황보설의 아들)인 8대왕 현종이 즉위한 이후에 유배지에서 풀려나
고향인 황주에서 살다가 현종 20년 정월에 다시 왕궁으로 돌아와 66세를 일기로 숭덕궁에서 생을 마감했다.
묘는 개성의 유릉(幽陵).
제8대 현종은 누구인가 ? -------------------------------------------------
현종(8대)은 5대 경종의 제4비인 헌정왕후(천추태후의 동생:황보설)가 경종(5대) 사후에
황주의 사가로 돌아와 머무르던 도중에 태조 왕건의 8자인 "욱"(드라마에서의 경주원군)과의 사이에
불륜으로 임신을 하였고 이에 자신의 오빠인 성종이 "경주원군 욱"을 귀양 보냈으며
헌정왕후(천추태후의 동생:황보설)는 황주의 사가에서 혼자 아이를 낳다가 산욕으로 죽었으며,
부모가 없는 아이를 오빠인 성종이 궁으로 데려와서 키우게 된다
이가 바로 대량원군(후에 8대왕 현종이 됨)이며 연관해서 많은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
천추태후의 가족관계 ----------------------
아버지: 대종(戴宗, ?~969): 태조 왕건의 아들
어머니: 선의왕후 유씨(宣義王后 柳氏)
오빠: 고려 제 6대 왕 성종(成宗, 960~997)
여동생: 현종의 모후 헌정왕후(獻貞王后)
조카: 제 8대 왕 현종(顯宗): 자신의 동생의 아들
남편: 고려 제 5대 왕 경종(景宗, 955~981) : 자신과는 사촌 지간
맏아들: 고려 제 7대 왕 목종(穆宗, 980~1009): 경종과의 사이 외아들
정부(情夫): 김치양(金致陽) :둘째 아들: ? 기록이 없음
천추태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남매지간(왕건의 수 많은 왕후의 아들 딸)
천추태후 드라마에서 (많은 부분을 퍼와서 글을 추가했음) ------------------------------------
경종(최철호)은 신정황태후(반효정)에게 꼬박꼬박 '외할머니'라고 부르고 치(뒷날의 성종)이나
두 공주에게 '짐의 외사촌'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한국의 족보상으로 이들은 외할머니나 외사촌이 아닙니다.
그냥 할머니나 사촌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고려 태조 왕건은 6명의 황후를 비롯한 29명의 부인을 통해 수없이 많은 자손을 두었습니다.
모두 왕권 안정을 위한 노력이었죠. 신라 왕가를 비롯해 각 지방의 유력한 호족들과 모두 혼인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 자손들 사이에서 빽빽한 혼맥이 다시 형성됩니다.
즉, 똑같은 왕건의 소생인 형제 자매들끼리 어머니만 다르면 다시 혼인을 한 것입니다.
단지 남자는 아버지의 성대로 왕씨를 따랐지만 딸들은 어머니의 성을 따랐기 때문에 얼핏 봐서는
형제간 혼인이 아닌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고려 5대 왕인 경종은 4대 광종의 아들입니다. 광종은 태조의 제3 황후인 신명황후 유씨의 소생이죠.
그리고 광종의 아내인 경종의 어머니는 제4 황후인 신정황후 황보씨(드라마의 반효정)의 딸인 대목황후입니다.
대목황후도 황보씨로 설정되어 있지만 엄연히 왕건의 딸이죠.
즉 어머니만 다른 태조 왕건의 남매끼리의 혼인 이었던 것 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광종의 어머니인 신명황후 유씨는 정종이 되는 요 왕자, 광종이 되는 소 왕자를 낳고
태조 왕건의 신정황후 황보씨는 대종으로 추증되는 욱 왕자를 낳습니다.
이 욱 왕자가 제6 황후인 정덕황후 유씨의 딸(역시 어머니만 다른 남매입니다)과 결혼해서
낳는 것이 바로 뒷날의 성종인 황주원군 치, 그리고 천추태후 황보수와 황보설 자매입니다.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남매들이지만 위의 예에 따라 아들은 왕씨, 딸은 황보씨로 불립니다.
따라서 경종이 신정황태후를 가리켜 외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일면 맞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어머니(황보)를 낳은 어머니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황주원군이나 황보수-황보설 자매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의 동생(삼촌)인 대종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외사촌인 동시에 친사촌이 되는 셈이죠.
아울러 신정황태후 또한 태조 왕건 할아버지의 여러 부인들 중 하나이니 그냥 할머니도 되는 셈입니다.
이처럼 거미줄같은 고려 왕조의 혼맥이 결정판을 이루는 것이 바로 8대 현종입니다.
현종의 아버지는 현재 출연하고 있는 경주원군 욱(대종 욱과 한자가 다름 : 드라마 속의 김호진).
즉 태조 왕건의 제5황후인 신성황후 김씨의 아들 입니다.
신성황후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사촌이니 신라 왕가를 외가로 두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신라계 중신들이 다음 왕으로 경주원군을 밀려 하죠.
경종의 아내인 헌정왕후(황보설)가 경종 사후에 사가인 황주로 돌아와 살던 도중에
태조 왕건의 아들인 경주원군과 정분이 나서 그 사이에서 대량원군(뒷날의 현종)을 낳습니다.
엄연한 왕비가, 그것도 자신의 숙부이자 남편의 숙부가 되는 황실의 근친과 바람을 피운 셈입니다.
그런데도 왕족의 씨앗이기 때문에 아이는 대량원군이라는 엄연한 왕자의 칭호를 받고 자라나죠.
심지어 불륜의 주범인 경주원군까지도 사후에 안종이라는 이름으로 왕의 자리를 추증받습니다.
이게 다 왕의 아버지가 된 덕이죠.
희대의 불륜 커플 김치양과 천추태후 -----------------------------------------------
그러니 뒷날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바람을 피워 낳은 아들을 병에 누워있는 목종에 이어서
왕위에 올려 놓으려는 생각을 했다해도 지나친 무리는 아닙니다.
천추태후 자신이 왕건의 친손녀이니 그 아들도 절반은 왕씨의 자손이니 말입니다.
중국의 예를 보더라도 자신의 친정 쪽으로 아예 왕가를 바꿔 놓으려 한
한고조 유방의 아내 여씨나, 측천무후 무씨에 비하면 훨씬 양심적인 편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이런 식으로 살펴볼 때
고려 초기의 왕실 계보는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다 나름대로 재 보고 필요에 의해 결혼을 많이 했기에
오늘날의 도덕관념으로 재단해서는 안되겠죠.
왕가가 사방의 귀족들로부터 권위의 위협을 받던 시절에
조금이라도 왕가의 권위와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외성 귀족들이 외척으로 참여하는 것을 심각하게 제한해야 했고,
그래서 여자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도록 하다보니 성씨가 다른 사이에서 결혼이 가능했고
그 결과가 이런 심각한 족내혼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 고려의 근친혼의 금지 -------------------------------------------------------
고려 초기에는 근친혼이 매우 많았다. 근친혼이 많다보니 문제가 또한 많게되었고
근친혼이 규제 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가 건국 된지 160여 년이 지난 문종때부터였다.
1058년(1058)에는 대공친인 사촌끼리 결혼하면 그 자식이 관리가 될 수 없게 하였다.
고려 선종2년(1085)에 이복남매가 결혼하여 낳은 자식은 벼슬에 오르는 것을 금하였다.
선종2년의 이러한 조치는 바로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금지조치가 취해진 이유는 고려사회에서 유학이 통치 이념으로 정착되면서,
중국에서 동성근친간의 결혼을 철저히 금지하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문종이후에는 왕실에서도 남매간의 결혼 사례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국가는 이러한 금지 규정을 실천하는데 앞장섰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랜 근친혼 풍습으로 인해
고려에서는 중국처럼 동성의 결혼을 금지하는 규정을 철저 하게시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중국과 달리 고려에서는 결혼당사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관직에 나갈 수 없게 하는 등 간접적 처벌을 하였던 것이다.
참고로 고려조 초기의 왕계보 --------------------------------- -----
태조 : 왕건 (왕후 6명, 후궁23명 : 아들25명, 딸8명) 이중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성을 따고
딸들은 어머니의 성을 따게되어 아들과 딸의 성이 다르기에 족내혼을 많이 하게된다
2대 혜종 : 왕건의 장자로 장희왕후 오씨의 아들
3대 정종 : 왕건의 아들로 신명순왕후 유씨의 아들 즉 2대 혜종의 배다른 동생
4대 광종 : 왕건의 아들로 신명순왕후 유씨의 아들이자 3대 정종의 친동생 즉 2대 혜종의 배다른 동생
5대 경종 : 4대 광종의 아들(현재 드라마 에서의 왕)이며 왕건의 왕후인 신정왕후 황보씨(현 드라마의 외할머니) 딸
과 왕건의 아들이 결혼(조카딸과 삼촌이 결혼)해서 낳은 왕건의 손자
6대 성종 : 현재 드라마에서의 황주원군으로 왕건의 손자이자 천추태후의 오빠이며
본래 황위는 경종의 아들로 이어져야하나 천추태후와의 사이에 낳은 목종이 2살이어서 대습을 하게되었음
7대 목종 : 천추태후의 아들로 6대 성종에게 후사가 없어 조카이자 5대왕의 적통에게 황위를 잇도록 햇음
그러나 목종도 후사 없이 병약한 모습을 보이게되자 모후인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불륜으로 생긴 아들을
후사로 삼으려는 욕심으로 인하여 모반한 강조에게 희생당함
8대 현종 : 천추태후의 동생 헌정왕후가 5대 경종 사후에 황주 사가에서 지내다가
드라마에서 호인전 호감을 가졌던 경주원군 "욱" 사이에 불륜으로 생긴 왕자로
6대 성종이 궁에서 키웠으나 천추태후와 김치양에 의하여 강제로 승려가되어
절에서 지내다가 모반한 강조에 의하여 왕으로 옹립됨
9대 덕종 / 10대 성종/ 11대 문종 : 모두 8대 현종의 아들들로 선왕이 후사 없이(9대,10대 모두 후사 없음)
돌아가시자 8대 현종의 아들 형제가 돌아가며 왕위를 승계받았음
12대 : 11대 문종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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